이천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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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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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숙공 박난영
그는 인조(仁祖) 초 후금과의 관계가 복잡할 때 회답관, 선위사, 춘추신사 등으로 활약했다.

심양을 왕래하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청장 마부대 용골대 등과 휴전 교섭을 했다. 이때 조정에서는 청(淸)나라와 화의하기 위하여 능봉군(綾峯君)과 심집 (沈輯)을 왕자(王子)와 대신(大臣)으로 변장시켜 보냈다.

이때 청나라의 진영에서는 서기 1617년 10월 강홍립(姜弘立) 도원수를 따라 명(明)나라 원병으로 출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머물러 있던 박난영에게 이들이 정말로 왕자와 대신이냐고 물었다. 이때 박공은 왕자가 아님을 알면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사실이라고 말했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박난영의 말을 믿으려 했으나, 병자호란시 통역관으로 만행을 저지른 정명수가 주장하기를, "거짓말 같으니 조선에 다시 확인하여 보자."하였다.

그리하여 거짓이 탄로나 청(淸)이 대노하면서도 비록 적국의 신하이지만 충절(忠節)을 가상히 여겨 "살고져 하면 그대로 앉어있고 죽고져 하면 일어나라"하니 공이 혼연이 일어나는지라 역관이 하도 딱하여 울며 청하기를 한마디 말이라도 "호(胡)를 대접해 주면 후일을 기약할수 있다"하니
공이 분연이 꾸짖어 말하기를 "군왕(君王)께서 곤욕을 받으면 신하된 사람은 죽음으로 막을 뿐이다. 어찌 살길만을 도모하랴"라고 했다.

남한산성 쪽을 향해 사배(四拜)하고 의젓이 참형(慘刑)을 받아 최후를 마치니 향년(享年) 62세였다.

공의 위대한 훈공은 법의 절차에 따라 보국숭록대부령돈영부사(輔國崇祿大夫領敦寧府事)로 특증 (特贈)되었고 나라에서 예절을 갖추어 제사 지냈으며 돌아간 다음해 이천 호법 돈의곡 (遯義谷:매곡1리) 선산에 장례를 모셨다.

그 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숙종(肅宗) 을묘년(1675)에는 왕명으로 충신 정려(旌閭)를 고향 이천 돈의곡에 세웠으며 고종임금때 시호가 내리니 난불망국왈충 집심결단왈숙 (亂不忘國曰忠 執心決斷曰肅)이라해서 충숙(忠肅)으로 하였다.


<旌門內容>

忠臣 贈 大匡輔國 崇綠大夫 議政府 領議政 兼 領經筵弘文館 藝文館 觀象監事 行
資憲大夫 知中樞府事 謚 忠肅公 文閭 高靈后人 朴蘭英 肅廟 乙卯 十一月 日 命旌

(해설)

충신으로 대광보국승록(정1품)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 홍문관 . 예문관 관상감사에 증직되고 시호를 충숙공으로 받은 행자헌대부 지중추부사이며 본관이 고령인 박난영의 정려문이다.

왕명에 의하여 숙종 1년 (1675년)에 정려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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